이탈리아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2세가 계획한 서인도 탐험항해에 참가해 1497~1502년까지 2회에 걸쳐 카리브해 연안과 브라질 북쪽 해안을 탐험한 뒤 후원자인 메디치가의 로렌조 디 피에르프란체스코Lorenzo di Pierfrancesco에게 보낸 서신에서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을 ‘신세계Nuovo Mundo’라고 썼다.1507년 독일의 지리학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Martin Waldseemüller는 을
대항해 시대인 16세기,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제도, 오세아니아 등에 식민지를 개척한 강력한 제국 중의 하나였다. 대항해 시대의 중심지인 세비야Seville의 ‘카사 데 라 콘트라타시온Casa de Contratación, 通商院’은 식민지통치기관의 하나로, 무역과 관세ㆍ출입국ㆍ소송 등의 관리와 항해술 훈련을 수행했고, 당시 모든 선박에 규범적으로 사용되던 비밀스런 공식 해도Portolano인 ‘파드론 레알Padrón Real’을 제작ㆍ관리했다. 파드론 레알에 기재된 정보는 최신 발견된 것과 수정을 포함해 최고의 국가 기밀
15세기 베네치아의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조반니 레아르도Giovanni Leardo의 생애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으나, 그는 중세 유럽에서 가장 걸출한 세계지도 3점을 남겼다. 이 가운데 1442년 날짜가 기록된 가장 오래되었으나, 단순하고 조잡한 지도는 이탈리아 베로나시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두 번째 1448년에 제작된 더욱 정교한 지도는 비첸차시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 번째 가장 크고 가장 정교한 지도는 미국지리학회A.G.S.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미국지리학회 소장본은 미국의 기업가이며 자선가인 아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보들리안 도서관은 2002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키타브 가라이브 알-푸눈 와-물라 알우윤Kitāb Gharāib al-funūn wa-mula al-uyūn’이라는 중세의 아랍어 사본을 입수했다. 이를 영역하면 ‘The Book of Curiosities of the Sciences and Marvels for the Eyes’이고, 일반적으로는 ‘The Book of Curiosities’, 즉 ‘호기심 가득한 책’ 또는 ‘진서珍書’라고 하는데, 이슬람 지도제작의 역사는 물론 근대 이전의 지도제작 역사
구약성경에 나오는 ‘시편詩篇’은 150편의 종교시로, 신의 은혜에 대한 찬미와 메시아에 관한 예언적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시편은 성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간략하고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어 ‘작은 성서’라고 불리고, 거룩한 그리스도교 교회를 보고 싶다면 시편을 들라”고 했다. 시편은 모세로부터 서기관 에스라Ezra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0년에 걸쳐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저자와 시기는 분명치 않다. 마르틴 루터 “시편은 작은 성서”채색된 삽화와 함께 화려하게 장정된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미국의회도서관 맵 디비전에 중국지도로 분류된 라는 지도첩이 있다. 이 지도첩은 1927년 워너Warner가 구입한 것으로, 9장의 지도와 함께 서문과 범례가 포함되어 있다. 지도첩 표지의 제목은 ‘대명일통산하도大明一統山河圖’이나, 서문 첫머리에 나오는 지도 제목은 ‘대명일통천하도大明一統天下圖’라고 되어 있다.9장의 지도는 접어서 두꺼운 종이로 배접되었는데, 각 지도 뒷면에는 지도명과 함께 근봉謹封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지도첩의 높이는 40cm로 오늘날의 타블로이드판(
2008년은 터키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마흐무드 카쉬가리Mahmud Kasgarli의 탄생 1,000년이 되는 해로, 유네스코UNESCO는 2008년을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해로 선언했다. 마흐무드 카쉬가리는 11세기에 생존했던 터키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 민족학자로, 을 편찬했고, 투르크계 최초의 세계지도를 제작했다.마흐무드 카쉬가리의 원명은 마흐무드 이븐 알-후사인 이븐 무함마드 알-카쉬가리Mahmūd ibn al-husayn ibn Muhammad al-Kāšġarī
‘이 지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에 근거해 위도, 경도, 기후 구분에 따라 제작했고, 세계의 기하학적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적이고 완전한 항해용 해도를 제공한다.’이 글은 발스페르거의 세계지도 하단 설명주기 첫머리에 나온다. 여기에서 〈우주지Cosmographia〉는 150년경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편찬한 〈지리학Geographia〉을 9세기경 아랍어로 번역하면서 붙여진 이름이고, 이 아랍어 판 〈우주지〉가 1406년 라틴어로 번역되자 유럽의 지리적 지식과 지도제작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안드레아스 발
“다케시마竹島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또한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히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 일본이 예로부터 다케시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옛날 자료와 지도를 통해 명백히 밝혀져 있다. 17세기 초에는 일본 민간인이 정부(에도막부)의 공인 아래 울릉도로 건너갈 때 다케시마를 항행의 목표로 삼거나 또는 배의 중간 정박지로 이용함과 동시에 강치나 전복 등의 포획에도 이용했다. 늦어도 17세기 중반에는 일본의 다케시마에 대한 영유권이 확립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이 글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내
프란체스코 로셀리Francesco di Lorenzo Rosselli는 지도제작자이기 이전에 세밀화가이며, 판화가로 더 유명했다. 그는 144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고, 1513년에 타계했다. 그의 가문은 15~16세기에 걸쳐 피렌체에서 활약한 예술가들이었다. 프란체스코의 아버지 로렌조 로셀리Lorenzo Rosselli는 석공石工이었고, 이복형 코시모 로셀리Cosimo Rosselli는 화가였으며, 프란체스코의 아들 알렉산드로 로셀리Alessandro Rosselli는 시인이자 인쇄공으로 활약했다. 프란체스코 로셀리(이하
콜럼버스C. Columbus는 멀리 아프리카 남단을 돌지 않더라도 서쪽으로 가면 인도에 닿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1492년부터 1504년까지 4차에 걸쳐 서회西回 항로를 탐험했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인도가 아니라 오늘날 ‘서인도제도’라 불리는 카리브해의 섬과 대서양 연안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당시 아메리카대륙의 존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콜럼버스의 탐험 결과를 처음 세계지도에 그린 지도제작자는 조반니 마테오 콘타리니Giovanni Matteo Contarini이다.콘타리니는 베네치아공국을 건국한 가문 중 하나
영국 본토에 해당하는 브리튼Britain섬은 기원전 6세기경 북부 유럽의 켈트족Celts이 침입하면서 처음 정착했고, 기원전 55년에는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침입한 이후 서기 410년까지 로마 제국에 의해 지배되었다. 449년에는 게르만족에 속하는 앵글로색슨족Angles-Saxons이 침입해 켈트족을 몰아내고 7왕국을 건설했다. 그때부터 ‘앵글로 인의 땅’ 이라는 뜻의 ‘잉글랜드’라고 불리게 되었다. 앵글로색슨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English의 시초가 되었는데, 당시의 영어는 ‘고대 영어Old
유럽에서 북극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프톨레마이오스C. Ptolemaios의 저서 〈지리학Geography〉이 1411년경 이탈리아의 학자 자코포 드안젤로Jacopo d’Angelo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돼 경위도에 의한 전 지구적 좌표체계가 알려지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16세기에 이르러 북극을 통해 동양에 이르는 최단 항로의 개척이 시작되면서 북극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다. 이때 네덜란드의 지도제작자인 메르카토르가 최초로 북극지도를 제작했다.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는 1512년 플랑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마지막 책인 ‘묵시록黙示錄(계시록이라고도 함)’은 저자 요한이 예수 재림 때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하느님의 계시啓示를 통해 기록한 예언서로, 성경 가운데 가장 해석이 어려운 책으로 꼽힌다. 8세기 후반 에스파냐 리에바나의 수도사 베아투스Beatus는 801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믿음 아래 묵시록 해설에 진력해 776년 를 편찬했다. 베아투스(730년경~800년경)는 에스파냐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왕국Kingdom of Asturia의 리에바나 지역(지금의 칸타브리아)에서 태